[인생은비매품] 인생을 짓는 19세 소녀 목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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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비매품] 인생을 짓는 20대 목수 소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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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건축학도의 하루씩, 내 인생을 짓는 법 - 이아진 목수

“돈은 따라온다고 믿어요. 그래서 먼저 움직여요.”

이아진 님이 들려준 이 말은 단순한 다짐이 아니라, 삶 전체를 지탱하는 태도처럼 들렸습니다. 마치 건물의 기초처럼요. 우리는 종종 인생의 선택 앞에서 ‘돈부터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머뭇거리곤 합니다. ‘돈이 돈을 부른다’라는 말처럼요. 그런데 이아진 님은 그 전에 꼭 있어야 할 것을 먼저 짚었습니다. 돈보다 먼저 움직이게 만드는 자기만의 확신, 그게 있어야 한다고요.

그 확신은 하루하루 살아내며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인생극장>에서 소개된 19살 병아리 목수, ‘전진소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도시를 사랑하는 건축학도. 모두 이아진이라는 한 사람의 서로 다른 얼굴입니다. 현장에서 1인분으로 인정받기 전까지 무급으로 일했고, 완벽하진 않아도 ‘끝까지 가보자’라는 마음으로 버텨왔습니다. 그렇게 ‘하루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선택들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은 본인을 어떻게 소개하나요?

많은 분이 저를 “인간극장에 나왔던 병아리 목수!”, “유튜버?”, “작가?” 이렇게 떠올리세요. 어릴 때 방송에 출연한 걸 계기로 ‘소녀 목수’라는 이미지가 생겼고, 그게 제 이름처럼 따라다녔죠. 다행히 제 이야기를 흥미롭게 봐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조금 더 간결하게 소개해요. 목수이자 건축학과에 다니는 대학생입니다.

14살에 호주 유학을 갔다고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아요.

엄마가 젊었을 때 호주에서 잠깐 유학 생활을 한 적이 있으세요. 그래서 저도 좀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공부하길 바라셨던 것 같아요. “호주는 학원도 없고, 실컷 뛰어놀 수 있어. 가볼래?” 하시는데… 혹하잖아요. 안 넘어갈 수 있나요? (웃음) 그렇게 14살에 혼자 호주로 떠났고, 돌아온 건 고등학교 졸업을 1년 앞두고였어요. 저는 자퇴를 선택했거든요. 사회에 나가기도 전이었지만, 그때 제 안에 이런 질문이 있었어요.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사람인가? 그 질문에 답을 못 찾겠더라고요. 그렇다면 직접 발로 뛰어서 찾아보자 싶었어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목수 일을 배우기 시작했죠.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고등학교를 자퇴할 때 제 마음속 키워드는 하나였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그때 아빠가 막내로 일하고 계시던 목조주택 건설 현장이 있었어요. 딱 하루, 나가볼 기회가 생겼죠. 요즘 말로 하면 ‘30일 무료 체험’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웃음) 원래 건축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집이 어떻게 지어지는지 현장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정말 구경 삼아 따라갔는데… 그 하루 만에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아요. “내일도 나올게요.” 그 말을 제가 먼저 했던 기억이 나요.

무엇이 그렇게 끌렸어요?

목수분들이 일사불란하게 일하시는 모습 자체가 멋있었어요. 각자 맡은 역할이 분명했고, 하나의 일을 위해 여러 사람이 함께 회의하고, 책임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 깊었죠. 혼자 뚝딱 해내는 게 아니라, 다 같이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장면이랄까요. 그걸 보는데 자연스럽게 ‘나도 저 안에 소속되고 싶다’ 싶더라고요.

그런데 해본 적 없는 일이잖아요? 두렵지 않았어요?

맞아요. 처음엔 당연히 못 했어요. 예를 들어 팀장님이나 사수님이 “OO 좀 가져와”라고 하시면, 그게 뭔지 모를 때가 많았거든요. 근데 또 모르겠다고 말하긴 싫은 거예요. 그래서 “네, 알겠습니다!” 하고 트럭으로 가서 혼자 스마트폰으로 검색했죠. 비슷한 걸 찾아서 가져갔는데, 아니라고 혼나고… 다시 가고. 그런 식으로 하나씩, 몸으로 익히며 배워갔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그때 막 학교를 나온 여학생이었잖아요. 그래서 스스로 솔직하게 인정했어요. ‘나 지금 1인분 못 하고 있다. 한 0.2인분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결심했어요. 1인분이 될 때까지는 돈을 받지 않겠다. 실제로 1년 가까이 무급으로 일했어요. 그게 단순히 “저 진심이에요, 잘할 수 있어요!” 같은 말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정작 저 스스로가 이해가 안 되면 너무 창피하잖아요. 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그 수준에 빨리 닿고 싶었어요. 그래서 계속 팀장님께 물어봤어요. “제가 계산해 봐도 돼요?”, “재단해 봐도 돼요?”, “이건 제가 시공해 볼 수 있을까요?”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다는 제 마음을 알아주셔서, 팀장님도 흔쾌히 기회를 주셨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력이 쌓였고, 그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숙소에 돌아가서도 혼자 복습하고, 계산하다가 헷갈리면 밤에 다시 현장으로 가서 플래시 켜고 구조를 들여다봤어요.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1인분이 되어 있더라고요.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있었네요.

저는 배우고 싶어 하는 욕심을 숨기지 않으려고 했어요. 계속 물어보고, 알아가려고 했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물어볼 수 있는 범위가 점점 넓어졌고, 드디어 1인분을 하고, ‘일꾼’으로서 취급받을 수 있게 된 거죠. 그때부터는 더 자신감 있게,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른 나이에 일을 시작했잖아요. 수입이 생기는 재미도 쏠쏠했겠는데요.

19살부터 21살까지는 늘 같은 루틴이었어요. 현장으로 출근하고,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사실 돈 쓸 데도 별로 없었고요. 그 시기엔 오로지 ‘내가 성장하고 있나’ 그 생각뿐이었어요. 그래서 번 돈은 거의 다 공구나 장비, 자격증 준비, 작업복 같은 제 반경 안에서 쓰이는 것들에만 아낌없이 썼죠. 지금 생각하면, 제 일을 키우는 데 전부 투자하고 있었던 거예요.

목돈이 생기면 마음이 좀 달라지지 않나요? 여러 유혹이 생기잖아요.

근데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늘 그러셨어요. “넌 공부하기 위해 태어난 기계가 아니야”라고요. 그 말씀 덕분에 일이나 돈은 ‘도구’이지 ‘목적’이 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유학을 목표로 하고 있어서, 졸업 후 해외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고요. 그래서 요즘 제 머릿속의 80%는 그걸 위한 저축과 계획으로 가득해요. 어떻게 보면, 그 꿈을 향한 다음 발판으로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죠.

경제관이나 소비 태도에 부모님의 영향이 컸네요.

네, 정말 컸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서는 ‘내가 가진 걸 어떻게 잘 쓸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게 해주셨어요. 새로운 걸 갖기 위해 애쓰기보다, 이미 내 주변에 있는 것 중에서 잘 고르고, 잘 활용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고요. 그런 태도가 제 소비 습관이나 선택 방식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 같아요.

아진 님에게 ‘돈’은 어떤 의미인가요?

아직 어리고, 사실 돈을 많이 벌어본 것도 아니라서 ‘돈에 대한 신념이 있을까?’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부터 한 가지 확신이 있었어요. 영어 표현 중에 “money follows”라는 말이 있거든요. 직역하면 ‘돈은 따라온다’라는 뜻인데, 그 말이 유난히 마음에 남더라고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잖아요. 저는 내가 가려는 길이 옳고 거기에 진심이 있다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라고 믿어요.

그 말을 들으니 ‘돈이 생긴 뒤의 삶’에 대해서도 궁금해지는데요. 아진 님은 돈으로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가끔 부모님이랑 이런 얘기를 해요. “우리 내일 아침에 로또 당첨되면 어떡할까?” 하고요. (웃음) 그러면 진짜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해 봐요. 근데 결국 도달하는 결론은 늘 비슷해요. “지금 우리가 돈이 없어서 못 하고 있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리고 “로또에 당첨돼도 결국 마트 가서 장 볼 거 아니야?” 이런 말로 끝나요. 결국 돈이 생겨도 우리가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뜻이죠.

자퇴 이후 다시 학교에 들어가는 건 어떤 마음에서였나요?

고등학교를 자퇴할 때부터 생각했어요. 내가 서른이 되든 마흔이 되든, 배우고 싶은 게 생기면 언제든 주저하지 않고 다시 학교에 가겠다고요. 저한테 자퇴는 학업을 멈추는 게 아니라, 확신이 생겼을 때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미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확신이 생긴 게 바로 건축이었어요. 현장에서 목수로 일하면서 ‘이걸 더 깊이 배우고 싶다’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고, 그래서 다시 학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건축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가치 있는 걸 세상에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건축에 마음이 갔어요. 내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다 보니, 그걸 담을 수 있는 그릇이 건축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꿈이 크죠? 그래도 그런 말이 있잖아요. 달을 향해 쏴라, 빗나가도 별이 된다! (웃음)

대부분은 성적에 맞춰 대학교나 과를 정하잖아요. 아진 님의 선택은 좀 달랐던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대학을 고를 때 네임밸류보다 ‘내가 진짜 배우고 싶은 걸 배울 수 있는 곳인가’를 가장 중요하게 봤어요. 그 학교가 어떤 분야에 특화되어 있는지, 커리큘럼 방향은 어떤지, 선배들의 작업물은 어떤 색깔을 띠는지 꼼꼼히 살펴봤죠. 특히 교수님들이 어떤 건축을 추구하시는지를 유심히 봤어요. 그게 결국 제가 몇 년 동안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시선을 키우게 될지 결정짓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고민의 흐름도 궁금해졌어요.

그때 저는 도시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렇게 말하면 조심스럽지만,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도시 안에 많다고 생각했거든요. 생활에 치이고 지친 사람들이 가장 밀집된 공간이 도시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도시재생, 도시 건축이 궁금해졌어요. 그런 과목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사람을 위한 건축을 실제로 실천하고 계신 교수님들을 많이 찾아봤고요. 그게 제가 지금 다니는 학교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예요. 실제로 그때 ‘이분한테 꼭 배우고 싶다’라고 마음먹었던 교수님의 연구실에 지금 제가 들어가 있어요.

요즘 건축학과 생활은 어때요?

너무 재미있어요. 건축학과에는 ‘크리틱’이라는 문화가 있거든요. 교수님들이 제 작업에 대해 굉장히 신랄하게 피드백을 주세요. 그런데 그 순간조차도 저는 행복해요. 내가 몰랐던 걸 이렇게 전문가에게 직접 들을 수 있다니! 하며 신나 하죠. (웃음) 타파해야 할 과제가 있고, 항상 채워 넣어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게 굉장히 짜릿하게 느껴져요. 최근에는 학교 내 기프트숍을 학생 쉼터로 리뉴얼하는 작업에 참여했어요. 실제 건축가님이 총괄하시고, 저희 학생팀은 서포트하는 역할이었죠. 실무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게 정말 흥미로웠어요. 설계도 재미있었지만, 발표할 때 어떤 어휘를 고르고 어떻게 시각 자료를 준비하는지를 보는 과정에서 특히 많이 배웠어요. 건축가의 일은 단순히 도면을 그리는 걸 넘어, 공간을 ‘어떻게 설득하는가’까지 포함된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유튜브를 운영하고, 지난 7월엔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책도 냈잖아요. 20대 또래들과 꾸준히 소통하는 입장에서 요즘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뭔가요?

“좋아하는 건 있는데, 금방 식어요. 어떻게 해야 계속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정말 자주 받아요. 그런데 저는 그게 너무 당연한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365일 같은 온도로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저도 그런 마음이 들 때가 많고요. 그래서 저는 엄마가 제게 해주셨던 말을 그대로 전해줘요. “작심삼일도 매일 하면 결국 꾸준함이 된다.” 완벽하게 하려 하면 오히려 더 금방 지치거든요. 그 무거운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면 마음도 훨씬 편해지고, 더 즐거워져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생각보다 우리한테 별 관심 없어요. (웃음) 그러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자기 속도로 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맞아요.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면 다들 열정 넘쳐 보여서 괜히 혼자 위축될 때가 있어요.

저도 예전엔 무언가를 할 때는 늘 열정 있고, 파이팅 넘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게 꼭 정답은 아니더라고요. 권태롭고 귀찮으면, 그냥 그 감정대로 해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끝까지 해보는 거예요. 완벽하지 않다고 포기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돌아봤을 때 인생에서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완벽했던 순간보다도 내가 ‘완전하게 끝낸 일’들이더라고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아진 님은 다음 인생 항로를 어떻게 그리고 있나요?

저는 제 인생을 시즌제로 나눠서 기록하고 있어요. 시즌 1과 2는 소녀가 사회에 나가서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고군분투기였어요. 시즌 3는 갈피를 잡고, 이제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 어딘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시기였고요. 다가올 시즌 4는 건축가로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이 담기게 될 것 같아요. ‘이제 진짜 건축가가 됐다!’는 선언 같은 게 아니라, 대학원에 가서 건축에 대한 제 생각이 더 명확해졌을 때, “저는 이런 건축을 하고 싶은 사람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 그게 시즌 4의 시작이 될 것 같아요.

어떤 건축가가 되고 싶어요?

감히 바랄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현명한 건축가였고, 진짜 사람을 위해 공간을 짓는 사람이었다.’ 그냥 멋있는 건축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더 따뜻하게 만드는 건축을 하고 싶어요. 그런 마음이 제 건축의 중심에 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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