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비매품]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백발의 바리스타 이야기](https://static.toss.im/illusts/bankfeed-eggmoney-na-cover.jpg)
[인생은비매품]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백발의 바리스타 이야기
남산 소월길의 오르막, 어디선가 향긋한 커피 향이 풍겨옵니다. 초록색 차양과 노란색 목재 외관이 눈에 띄는 이곳은 은발의 바리스타가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리는 ‘텐스퀘어 남산’입니다. 이름처럼 3평 남짓한 공간에는 오래된 오브제가 곳곳에 놓여있고, 카페를 찾은 손님들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습니다.
텐스퀘어 남산의 바리스타 안두익 님은 은퇴 후, 커피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많은 이가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하고 두려워할 때, 안두익 님은 그동안의 경험과 깨달음을 토대로 은퇴 후의 삶을 현명하게 준비해 왔죠. 그리고 마침내 바리스타가 되어 작지만, 오롯이 나만의 것이라 말할 수 있는 카페를 열었습니다. 매일 내리는 향긋한 커피와 함께 돈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는 안두익 바리스타는 또 다른 멋진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메뉴를 보니까 시그니처 커피가 있더라고요. 텐스퀘어 남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커피인가요?
맛없거나 놀라지 않으면 환불해 드리겠다고 할 정도로 맛과 향을 자부하는 커피입니다. 샤인머스캣 향이 나고 청량감이 느껴져서 손님들도 놀라워해요. 아이스로만 판매하는데 작년 11월에만 1,400잔을 판매했어요. 지금도 하루 주문량의 70~80%를 차지하는 대표 메뉴입니다.
커피 한 잔 가격은 어떻게 되나요?
시그니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기준으로 7천 원, 라떼는 7천 5백 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게이샤 라떼는 원두 특성상 일반적으로 2만 원이 넘는데 우리는 9천 5백 원을 받아요. 처음부터 1만 원은 넘지 말자고 기준을 잡았거든요.
그 가격으로 기준을 잡은 이유가 뭔가요?
커피는 가격을 올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처음 금액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2백 원이 오르든, 3백 원이 오르든 소비자로선 오른 건 오른 거니까요.
요즘 저가 커피도 많은데 가격 경쟁에서 불리하지 않을까요?
맛이 담보된다면 얼마든지 마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한국 소비자들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얼마가 되었든 충분히 지불할 것이라고 자신했죠. 그래서 원두에 신경을 많이 써요. 커피는 로스팅이 전부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그 말에 100% 동감해요. 재료가 나쁜데 어떻게 좋은 커피가 나오겠어요. 다행히 저와 맞는 로스터리와 로스터를 만나서 더 좋은 맛을 낼 수 있는 원두를 공급받고 추출 방법도 다양하게 실험하고 있어요.
지켜보니까 아침부터 마감 시간까지 끊임없이 손님이 오더라고요.
주변에 회사가 있고, 날씨가 좋으면 손님이 많이 와요. 작년 6월에 문을 열었는데, 11월에 최고 매출을 찍었어요.
대략적인 매출을 여쭤봐도 될까요?
간단히 말해서 세 자리요. 개인 카페가 커피만을 판매해서 하루 매출이 세 자리라고 하면 높은 편이죠. 게다가 공간도 작잖아요. 물론 매일 최고치를 찍는 건 아닙니다. 카페 특성상 날씨는 물론, 외적 요인 영향을 많이 받아요.
바리스타가 되기 전엔 어떤 일을 하셨어요?
회사원이었죠. 1988년, 지금의 LG인 럭키금성에 입사해서 열심히 다녔는데 1992년 IMF가 터지면서 해직되었죠. 한번 회사에 들어가면 평생 다니는 것이 당연하던 시대였는데 모든 것이 변했어요. 이후 우연한 기회로 미국 회사에 취직해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직장 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불안했어요. 그 이후에도 구조 조정을 3~4번 더 당했거든요.
회사에 다녀도 안정적이지 않은 환경이었네요.
아침에 눈을 뜨고 갈 곳이 없다는 게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를 몸소 깨달은 시기였죠. 고민도 하고, 방황도 하고… 그러다가 정신을 차렸어요. 내가 현명해지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영원한 것은 없다, 작더라도 내가 오롯이 결정해서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실을 갖고 나만의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걸 알았죠.
나만의 것, 찾으셨나요?
그게 바로 커피였어요. 원래 커피를 좋아했어요. 1970년대에 커피를 처음 접했는데, 당시엔 뭔지도 모르고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미국에서 스타벅스가 문을 열고 그로 인해 커피 문화가 변하는 걸 목격하면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때 바리스타가 되겠다고 결심하신 건가요?
미국 시애틀로 출장을 갔는데 우연히 미국 3대 커피 스페셜티 브랜드인 ‘인텔리젠시아’의 커피를 마시게 된 거예요. 지금까지 마셔본 커피와 전혀 다른 걸 느끼고 은퇴 후에 커피를 해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죠.
바리스타 공부는 언제 하셨어요?
회사 다니면서 출장이나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올드타운에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맛보고, 바리스타와 스몰 토크를 나누면서 정보와 지식을 얻었죠. 은퇴 후에는 전문적으로 하고 싶어서 바리스타 학원을 1년 이상 다니면서 커피에 관해 깊게 공부했어요. 시간이 나면 카페 투어를 하면서 상권 분석도 하고요. 그럼에도 실전은 다르니까 창업하기 전에 6개월~1년 정도 연습을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마침, 후배가 이태원에서 펍을 하길래 전기와 수도세는 1/2, 임대료는 1/3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공간을 함께 썼죠. 덕분에 월 100만 원도 안 되는 금액으로 카페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기술, 관리 등을 배울 수 있었어요.
그렇다면 언제 본격적인 나만의 카페를 차리셨나요?
1년이 지나고 나서 서울 독산동의 3평짜리 공간에 나만의 카페를 차리게 되었어요. 월세가 25만 원으로 저렴했어요. 그곳이 텐스퀘어의 시작이었죠.
이태원에서의 경험이 있더라도 창업하기엔 부담이었을 것 같은데요.
퇴직금과 모은 돈이 있어서 자금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창업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죠. 좋은 위치를 얻으면 권리금은 물론이고 보증금과 월세가 높아서 자금의 1/2 이상이 묶이게 돼요. 그리고 카페 창업은 장비가 중요하거든요. 특히 제 카페의 콘셉트는 ‘커피 연구소’인지라 고급 장비가 필요했어요. 다행히 제가 엔지니어 출신이라 기계를 볼 줄 알아서 커피 머신을 중고로 구매했어요. 만약 이태원에서의 경험이 없고, 현명하게 판단하지 않았다면 장비만 1억 원 정도 들었을 거예요.
비싼 기계는 중고를 구매한다… 괜찮은 방법인데요?
커피 머신은 새것을 구매해도 사용하다 보면 고장이 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차라리 처음부터 중고를 구매하되, 그를 잘 수리하는 전문가를 함께 알아보고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죠.
독산동에서 지금의 남산 소월길로 이사한 이유가 궁금해요.
지인이 방배동에 갤러리를 여는데, 그 안에서 카페 운영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어요. 그래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제 콘셉트와 맞지 않아서 그만두고 다시 새로운 공간을 찾다가 여기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이 동네는 예전에 회사 생활을 하던 곳이라 지리적으로 잘 알았어요. 또, 주변에 회사가 많고, 바로 옆에 유명한 맛집이 있고. 게다가 공원과 남산 타워에 가는 길목이라 관광객이 많았거든요.
내부 인테리어를 직접 하셨고요.
텐스퀘어 남산의 콘셉트는 올드타운에 있는 커피 연구소였어요. 올드타운이라고 하면 날 것의 거친 느낌이 떠오르잖아요. 그래서 이전 인테리어에서 벽지만 뜯어내고 다른 건 그대로 뒀어요. 그리고 인테리어 작업 시 제가 사용한 공구들, 오래된 느낌의 오브제들을 자연스럽게 배치했는데, 이런 분위기가 올드타운의 카페라는 컨셉트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콘셉트를 명확하게 정하고 계획하신 거군요.
카페 창업에선 콘셉트는 매우 중요한 요소예요. 콘셉트란 손님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커피 맛과 추출 방법, 인테리어 심지어 바리스타의 마인드까지 콘셉트에 의해서 결정돼요. 텐스퀘어 남산의 또 다른 컨셉은 스몰 토크이기도 해요. 원래 올드타운의 카페에선 바리스타와 손님이 스몰 토크를 하면서 서로의 하루와 생각을 공유하거든요.
손님과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세요?
보통 커피로 대화의 물꼬를 트죠. 커피에 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이야기 나누다가 점점 주제가 넓어져 술과 여행으로도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요. 때로는 손님과의 대화에서 이벤트를 기획할 때도 있어요. 손님 중 한 명이 음악을 한다길래 개나리 필 때쯤 카페 앞에서 버스킹 공연을 해보자고 말했거든요. 그게 계기가 되어 지난 4월에 공연이 열렸어요.
그런 행사들도 스몰 토크라는 콘셉트가 손님들에게 통했다는 의미 같아요. 혹 콘셉트 외에 개인적으로 세운 매출 목표도 있으셨나요?
이제는 자식들도 다 키웠기 때문에 부양할 가족이 있는 건 아니어서 처음엔 내 인건비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인건비를 벌었다면 그를 제외하고 한 달 용돈 정도 벌면 되겠다 싶었고요. 그 목표마저 이루게 된다면, 돈은 많이 벌수록 좋으니 이왕이면 많이 벌자고 결심했죠.
그 목표들을 다 이루셨나요?
생각보다 목표에 빨리 닿은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일정 수준까지 올라선 건 아니라 더 해봐야죠. 지금이 되기까지 힘든 순간이 많았어요. 하루에 손님 두 분만 온 날도 있고, 코로나를 겪으면서 손님 한 분, 한 분이 얼마나 귀하고 커피 한 잔 매출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배웠고요.
언제 바리스타가 되길 잘했다고 느끼세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텐데요. 조직에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카페는 작아도 내 일이니까 모든 걸 내가 결정할 수 있죠.
회사원에서 바리스타가 되고 카페를 창업하면서 돈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지셨나요?
돈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돈은 돈일 뿐이에요. 돈에 예속되면 힘들어진다는 걸 주변을 통해 봐왔어요. 제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돈보다 더 의미 있는 건 재정적으로 자립할 방법을 가르쳐 주고, 배우는 거예요.
바리스타로 제2의 삶을 살고 있지만, 삶은 계속 이어지니까요. 바리스타에서 은퇴하면 또 무얼 해보고 싶으세요?
제 인생 통틀어 제일 가치 있는 일은 여행이었기에 언젠가 카메라 하나 딱 메고 카페 투어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한국에서 온 바리스타라고 소개하면서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들과 커피를 내려 마시고 대화도 나누는 거죠. 방랑 바리스타라고 할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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