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비매품] 낯선 나라에서 시나몬롤로 새 삶을 시작한 한독 부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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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비매품] 낯선 나라에서 시나몬롤로 새 삶을 시작한 한독 부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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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커! 레커!” 독일식 시나몬롤로 써내려가는 두 번째 인생 – 매티 X 윤신영 베이커

새벽 5시 반, 불광천변에 있는 작은 베이커리 레커레커가 하루를 시작합니다. 독일에서 온 매티에게는 한국에서의 첫 사업이고, 윤신영에게는 11년 다니던 회사를 희망퇴직한 후의 첫 도전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보는 ‘다른 삶’이죠. 하지만 낯선 나라에서 사랑을 만나고, 안정된 회사를 떠나 꿈꿔왔던 일을 시작하는 용기를 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두 사람은 그 불확실한 세계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핀란드 교환학생 시절 맛본 시나몬롤의 기억에서 시작해, 100곳이 넘는 매물을 발품 팔아 찾아낸 이 자리까지 말이죠. ‘완벽하도록 노력하되, 완벽에 얽매이지 말 것.’ 그들이 말하는 ‘퍼펙트-대충’은 삶을 좀 더 맛있고 가볍게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불확실함 속에서 찾은 확신, 레커레커에서 빵을 굽는 오늘이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한 내일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매장이 불광천을 마주하고 있군요! 5월의 녹음이 매장까지 물들이는 느낌입니다.

신영 진짜 찾고 찾아 만난 자리인데, 너무 마음에 들어요. 이 자리를 만나기까지 정말 한 100곳 이상은 돌아다닌 것 같아요. 이 동네뿐만 아니라 연남동, 합정까지 발품을 팔았죠. 그런데 결국 남들 신경 쓰지 말고 우리 마음이 편한 곳, 우리가 오래 일하고 싶은 곳으로 정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운 좋게 이곳을 찾을 수 있었고요.

매티 서울의 다른 지역들은 정말 빽빽하거든요. 사람도 너무 많고, 교통도 복잡하고... 물론 여기도 차는 많지만 그래도 다른 쪽에 비하면 훨씬 평화로운 느낌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불광천이 있잖아요. 여기서 자전거 타는 게 정말 좋아요. 즐겁기도 하고 마음도 편해지거든요. 그래서 이 동네가 마음에 들어요.

매장 이름이 독특해요. 무슨 뜻이에요?

매티 Lecker는 독일어로 ‘맛있어요’라는 뜻이에요. 맛을 표현할 때 대부분 ‘부드러워요’, ‘달콤해요’ 이렇게 말하곤 하잖아요. 저는 그냥 ‘레커레커’라고만 해도 충분할 것 같아요. 한국어로 “맛있어, 맛있어” 이런 느낌으로요.

신영 제가 들었을 때 Lecker에는 맛있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즐거움, 행복함, 신선함 같은 다양한 긍정적인 의미가 내포된 것 같았어요. 그런 좋은 기운을 저희 고객님에게 전해드리고 싶어서 레커레커라고 이름 지었어요.

레커레커만의 특별한 메뉴는 무엇인가요?

매티 저희는 독일식 시나몬롤을 소개하고 있어요.

신영 베이커리를 준비하며 ‘내가 언제 진짜 행복했지?’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기억을 더듬어 보니 핀란드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가 떠오르더군요. 한적한 자연에 앉아 시나몬롤을 먹던 그 순간이요. 그런데 그 맛을 한국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럼 우리가 직접 만들어 보자, 이렇게 얘기하다가 시작된 거예요.

언제 어떤 계기로 가게를 개점하셨어요? 첫 사업이라고 알고 있어요.

신영 어렸을 때부터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뭘 해야 할지는 진짜 몰랐거든요. 그런데 매티와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희가 음식에 유달리 애정이 크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일단 매티가 요리를 엄청나게 잘해요. 그리고 제가 휴직하고 홈베이킹을 하던 차였고요. 독일은 빵이 주식이니까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마음이 모였어요. 때마침 코로나19 이후에 회사가 어려워져서 희망퇴직이 떴고, 주저 없이 ‘이거다, 딱 기회가 왔다!’ 싶었어요. 매티와 상의하고 희망퇴직을 신청한 다음 본격적인 사업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함께 베이커리를 계획하신 거네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신영 엄마와 함께 외국인 홈스테이를 하고 있었는데, 2019년 가을에 매티가 손님으로 왔어요. 제가 쉬고 있을 때라 매티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친해졌죠.

매티 한국에 여러 번 오면서 관심을 키워오다가 진짜 가정생활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 홈스테이를 한 달 동안 했어요. 그때 신영을 만났죠. 이후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연애하고, 결혼하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레커레커는 한국과 독일 정서가 공존하는 베이커리네요.

매티 저희 마스코트인 당나귀도 그 매개체예요. 여기 선반 위 당나귀 인형 보이시죠? 독일에 있는 누나가 만들어준 뜨개 인형이에요. 독일에는 <브레멘 음악대> 같이 당나귀가 나오는 유명한 동화들도 있어요. 어렸을 때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당나귀를 볼 때면 자연스레 저의 옛 기억도 종종 떠오르고 좋아요.

신영 당나귀 성격이 매티와 비슷하거든요. 열심히 일하고, 고집 세고, 유머러스하고. 그리고 생긴 것도 조금 닮은 것 같아요. 입도 크고 그러니까요. (웃음) 그래서 주저 없이 히로랑 브라우니를 저희 레커레커 캐릭터로 삼게 됐어요. 레커레커는 이렇게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맛이 있는 베이커리죠!

요즘 하루 루틴은 어떤가요?

신영 저희는 새벽 5시에 일어나고, 5시 반쯤에 매장에 와서 베이킹을 시작해요. 반죽부터 다 직접 하거든요. 점심 때인 12시까지는 둘이서 거의 말 한마디 못 하고 빵만 만들고 12시에 오픈합니다. 그리고 저녁 6시까지 영업한 다음 청소하고… 집에 가서 쓰러져 자는 일상이랄까요? (웃음)

만만치 않은 작업이군요. 레커레커 준비 과정 또한 남다를 것 같은데, 제목을 붙인다면 뭐가 좋을까요?

신영 저희 표어가 있어요. ‘퍼펙트-대충’이라고.

매티 신영이는 저보고 완벽주의자라고 해요. 저는 그냥 모든 것을 제대로 하고 싶을 뿐인데요. 그래서 ‘퍼펙트-대충’이에요. 정말 잘 만들되, 대충스러운 느낌도 넣는 거죠.

신영 매티 방식대로 하다가는 진짜 다 늙어서 오픈한다고 잔소리를 좀 했어요. 완벽하게 하되 그 와중에도 빨리빨리 할 수 있는 건 빨리빨리 쳐내서 하자 그랬죠, 제가.

첫 사업이라 무엇 하나도 쉽게 결정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신영 아무래도 자영업이 처음이기 때문에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자는 관점으로 접근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퇴사하자마자 정부 지원 사업을 많이 알아봤어요. 먼저 본 게 서울시 골목창업학교이었고요. 지금은 프랩 아카데미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거기 4기로 들어가서 사업의 A to Z를 배웠어요. 또 서울창업허브 키친인큐베이터에 지원해 매티랑 같이 수강했어요. 베이커리 장비가 다 구비되어 있는 공간이 있어 레시피 테스트를 하고, 그때 만난 동료들과 정보를 나누면서 더 성장할 수 있었죠. 골목창업경진대회에서 수상해 받은 상금 1천 5백만 원으로 필요한 신제품을 구비하기도 했네요.

대략 창업 비용이 어느 정도 들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신영 다 합쳐도 5천만 원 아래일 거예요. 매장 평수가 20평이고 인테리어도 거의 저희가 했거든요.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통해 보셨을 텐데, 간판도, 문손잡이도 다 매티가 만들었어요.

매티 물론 전문적인 수준이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만든 것들이 완벽하진 않죠. 그러나 스스로 했다는 데 의미가 있고 적어도 작동은 잘 되고, 보기에도 괜찮고, 비용도 적게 들었으니 만족해요.

맞아요. 인스타그램에서 봤어요. 중고거래도 많이 하셨던데요!

매티 중고로 산 물건들 이야기가 정말 많은데, 그중에서 가장 큰 건 아마 저희 대형 오븐일 거예요.

신영 저는 진짜 반대했어요. 원래는 저걸 보러 간 게 아니라 오븐 렉을 사러 간 거였어요. 그런데 저 오븐을 20만 원에 주신다는 거예요.

매티 사장님이 가게를 정리하면서 오븐도 내놓으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유일한 문제는 저희에게 가게가 없었다는 거였지만… 오븐을 보자마자 머릿속으로 바로 계산 들어갔어요. 아, 우리 엘리베이터 들어가겠지? 아파트로 들고 갈 수 있을 거야! 이런 기회는 다시 없을 것 같았거든요. (웃음)

그 순간순간의 선택과 기회로 이 가게를 알차게 채웠다는 게 새삼 놀라워요.

신영 매 순간이 쉽지 않은 선택의 연속이죠. 그래도 매티랑 저랑 맨날 얘기하는 것이 실수를 안 할 수는 없다, 근데 실수를 더 잘하자, 실패를 더 잘하자, ‘Fail better’라고 이야기해요. 우리가 조금 더 나아지는 데에는 실수가 무조건 필요한 것 같아요.

매티 이전에 해본 적 없는 일이니까 실수가 정말 많아요, 끝도 없죠. (웃음) 그러나 조금씩 줄어들 것이고 당연히 변화가 계속 있을 거예요, 물론이죠.

어떤 선택을 할 때 중시하는 가치가 있다면요?

매티 정말 어려운 질문이에요. 저는 사실 그 순간을 사는 사람이라서요. 물론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기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있어요. 그럼에도 저는 지금 여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해요. 특히 ‘인생의 결정’이란 표현은 마지막 선택, 이게 끝이라고 들리곤 하죠. 하지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부분 바꿀 수 있어요. 이웃집 때문에 힘들다? 이사하면 되죠. 직장이 너무 힘들다?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하면 돼요. 이게 제가 선호하는 삶의 방식이에요. 너무 슬퍼하거나 좌절하거나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요.

신영 저는 고민이 있으면 그 바깥의 것들을 잘 못 보는데, 매티는 항상 그 순간에 열심히 살아요. 저도 그렇고 한국 사회에서는 일이나 연애나 자기 삶에 대해서 불안함을 많이 가지고 살잖아요. 근데 매티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저도 이런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 옆에 있다 보니까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요.

이 시점에서 고백하면 매티 님 입장에서 낯선 나라로 와 사업하는 게 힘든 결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할 거리가 아니란 걸 문득 깨달았어요!

매티 한국 여성과 결혼해 독일인으로서 서울에서 빵집을 차린다?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죠. 독일에서는 집과 회사만 오가는 게 전부인 삶이었는데, 완전히 달라졌어요. 처음 여행 왔을 때는 이 거대한 도시에서 나는 정말 작은 사람이고, 아는 사람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아서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내가 뭘 원하는가’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홈스테이하면서 신영을 만나고, 신영의 가족을 만나고, 다른 친구들도 만나며 점차 생각이 바뀌었죠. 독일에 가서도 다시 여기로 돌아오고 싶고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망설임 없이 서울에 방 한 칸과 직업을 가졌어요. 예상치 못한 일이긴 했지만 절대 두렵지는 않았어요. 지금도 즐기고 있어요.

문득 궁금한 점인데, 금융 생활에 있어 외국인으로서 겪은 재미있는 에피소드 있나요?

매티 한국에서 은행 업무는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계좌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외국인인 제가 경험한 선에서는 영어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요. 한 번은 온통 한국어로만 된 서류를 건네주면서 “여기 사인하세요, 여기요, 여기요”라고 하며 “좋아요, 다 괜찮아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웃음) 물론 저는 신영이 도움을 줬지만, 독일인인 저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에요. 저는 모든 걸 읽고 이해하지 않고는 공식 서류에 절대 서명하지 않거든요. 정말, 정말 위험할 수 있잖아요? 그렇지만 지금까지는 다행히 모든 게 괜찮았어요.

오늘을 살아가는 자신에게 한마디 한다면?

매티 잘했어! (웃음)

신영 저도 잘했어, 그리고 이겨내. 저는 이렇게 항상 당근과 채찍 둘 다 주는 편이에요.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었던 순간이 정말 많았거든요. 그때마다 우리가 선택했으니까 어쩌겠어, 이겨내야지 이런 말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오늘도 잘했고, 그리고 또 힘든 일이 있어도 이겨내자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잘 이겨내는 노하우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신영 제가 창업 준비하면서 읽었던 책 중에 인상 깊었던 구절이 있어요. 자신감이란 내 안에 있는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는 거고, 불확실함, 불확실성을 깨우는 거라고. 프랑스 철학자 샤를 페팽이 쓴 <자신감>이란 책이에요. 그걸 읽는 순간 자신감을 완전 달리 생각하게 됐어요. 그전까지 자신감이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타고나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그때부터 ‘그렇지, 처음 도전하는 영역이라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지’라고 생각해요. 사실 모든 사람은 다 처음이 있잖아요. 그래서 자신감을 갖고 꿈꾸는 것에 도전해 보시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매티 님 생각은 어때요?

매티 두려움이 있다는 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더 신중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니까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용기 내도 좋다고 말하고 싶어요. 정말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들을 시도해 보라고요. 물론 너무 대충하면 안 되죠. (웃음) 자신의 재정 상황이나 능력도 고려해야 하고요. 정말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확실히 하고, 너무 무리하면 안 돼요. 리스크는 최소화하고 천천히,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자신감, 그리고 용기! 오늘 들려준 이야기를 꼭 간직할게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꿈에 대해 들려주세요.

매티 레커레커가 계속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제품도 더 다양해지고요. 사람들이 여기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저희가 만든 걸 정말 좋아해 주시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아요. 언젠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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