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은비매품] 퇴사 후 제주 땅 위에서 살아가는 청년 농부 이야기
단호박 수확 철, 한여름 제주 김녕의 밭 한가운데. 햇빛은 뜨겁고 공기는 후끈한데 이상하게 이 사람, 꽤 즐거워 보입니다. 백인호 ‘그저제주’ 대표입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서울에서 10년 차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맵시 좋게 차려입고 여러 팀원과 만나 바쁘게 회의하고 열심히 제안서를 쓰는 일상이었죠. 그러다 지친 몸을 쉬게 하려고 퇴사했고, 홀연히 제주에 발이 닿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저제주’라는 이름으로 농사를 짓고 땀으로 일군 농작물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단순한 귀농기가 아닌 이유는 선택 앞에 선 그의 태도에 있어요. ‘언제든 떠날 수 있지만 오늘은 여기 있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전력투구보다 계절을 따라 천천히 걷는 방식을 택해, 땅으로 번 돈의 무게를 새삼 느끼며 하루하루를 쌓아가고 있거든요. 그저 살아보려던 곳에서 진짜 자기 일을 만들어낸 백인호의 여름 이야기를 여기 옮깁니다.
저희가 처음 연락드린 게 6월, 찾아뵌 건 7월이네요. 이 시기엔 어떤 작물이 한창이에요?
딱 단호박 철이에요. 보통 5월에 모종을 심고, 7월에 수확하거든요. 단호박 끝나면 바로 당근 파종 들어갑니다. 제주 농부로서는 이 시기 한 템포도 쉬기 어렵죠.
요즘 대표님은 어떤 농사를 짓고 계세요?
제 이름으로 된 밭은 두 군데 있어요. 하나는 미니 단호박이랑 당근을 키우고, 다른 하나에선 만차랑 단호박을 재배해요. 낯선 품종일 수도 있는데 단호박의 왕이라 불릴 정도로 단맛이 좋아요. 이건 7월쯤 심어서 9~10월쯤 수확하죠. 제 소유는 아니지만, 함께 농사짓거나 유통만 같이하는 밭도 있어요. 성산 쪽에서는 땅콩호박, 국수호박 같은 작물을 같이 재배하고 있고요. 브랜드 그저제주를 통해서는 백향과, 초당 옥수수 같은 품목도 판매해요. 다른 청년 농부들이 판로를 찾기 위해 먼저 연락 주기도 하고, 제가 먼저 “이 작물 한번 같이 해볼 수 있을까요?” 하고 제안드리는 때도 있어요. 그렇게 하나씩 손잡고 하다 보니 농사의 영역도 자연스럽게 조금씩 넓어지는 중이에요.
상품이 정말 다양하네요!
처음엔 미니 단호박이랑 당근 농사만 했어요. 그런데 수확하고 판매가 끝나면 4~5개월 정도 공백이 생기더라고요.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사실 더 난감한 건 그저제주 웹사이트에 생기가 사라진다는 점이었죠. 트래픽이 이렇게 뚝 끊기면 수확 철 다시 고객에게 어필해야 하고,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초반에는 판매 품목을 다양하게 늘려서 공백 기간을 채워나가는 게 가장 큰 목표였어요.
브랜드 소개 한번 해주세요
제주의 제철 농산물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그저제주는 2020년 7월에 런칭했어요. 첫 상품은 미니 단호박이었고요. 지금처럼 한창 수확하던, 바로 이 시기에 시작했죠.
어떤 계기로 농부가 되셨어요?
사실 제가 먼저 ‘농사’를 찾아간 건 아니었어요. 대학 때 알고 지내던 동아리 형이 제주에 내려와서 당근 농사를 짓고 있었고 “형, 일하는 데 놀러 가도 돼요?”하고 가볍게 물어본 게 시작이었죠. 말하자면 일용직처럼 농부의 삶을 체험한 거예요. 60~70대 삼촌, 이모들과 함께 새벽부터 밭에 나가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 5시쯤 되면 그날 일한 걸 현금으로 받았어요. 손가락이 안 굽혀질 만큼 고된 날도 많았지만,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해서 힘들다기보단 오히려 재밌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받은 돈이 정말 소중했고, 한동안은 쓰지도 못하고 그냥 간직해뒀어요.
땀 흘려 번 돈의 재미를 느꼈군요!
회사 다닐 땐 월급이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니까 돈의 무게를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몸을 직접 움직여야만 생기는 돈은 느낌이 정말 다르더라고요. 이후에 제 밭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수입이 많든 적든, 그 돈들이 훨씬 더 묵직하게 다가왔어요. 그렇게 하나하나 해보면서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본격적으로 시작한 첫 농사, 수익은 좀 났나요?
제주도에 내려온 첫 해, 운 좋게 제 밭이 생겨서 단호박 농사를 처음 지어봤어요. 이어서 당근도 심었고요. 몇 달 동안 열심히 키우고, 수확한 건 다 팔았죠. 그런데 나중에 계산기를 두드려보니까… 딱 200만 원 남더라고요. 6개월 동안 일해서 200만 원을 버는 직업이면 솔직히 정말 쉽지 않은 거잖아요. (웃음)
그때 불안하진 않으셨어요?
저는 서울에서 치킨집을 하든 뭘 하든 새로 시작하는 일에는 시간과 비용이 당연히 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주에 내려왔을 때도 ‘당장 얼마를 벌어야지’보다는, 이건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했죠. 만약 그때 좌절했다면 그냥 서울로 올라갔을지도 몰라요. 근데 제가 살고 싶은 곳에서, 원하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지타산이 맞았던 것 같아요.
그 투자로 얻은 건 뭐였을까요?
일단 하루의 일정을 제가 정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때 집중해서 하고요. 그런 리듬 자체가 저한테는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그게 요즘 제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제주에서 농부로 살기 전엔 어떤 일을 하셨어요?
서울에서 패션 회사 마케팅팀에서 일했어요. 거의 10년 가까이 다녔죠. 퇴사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결국엔 번아웃이었어요. 겉으론 여행도 잘 다니고 취미생활도 하고 삶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건강검진 중에 스트레스 저항성 검사를 받고 깜짝 놀랐죠. 생각보다 제 몸이 많이 지쳐있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뭘까?’ 고민했어요. 그렇게 회사를 그만두고 오랜 염원이던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떠났고, 그 여정이 지금 제주까지 이어졌습니다.
제주는 왜 좋았어요? 제주가 고향이신가요?
아뇨, 고향은 부산이에요. 한국에 돌아왔을 때 ‘무슨 일을 하지?’보다 ‘어디서 살까?’가 먼저 든 생각이었는데… 서울 말고 다른 곳을 떠올렸을 때 가장 자연스럽게 떠오른 게 제주였어요. 예전부터 제주에 관심이 있었고, 이곳에서 먼저 살고 있던 지인도 있었고.
어떤 점이 마음을 끌었던 걸까요?
회사원일 때도 저는 인천의 섬들 찾아가는 걸 좋아했어요. 배 타고 들어가는 그 순간, 섬 특유의 ‘부족한 느낌’이 참 좋더라고요. 제주에 살면서는 그런 감각이 더 자주 찾아와요. 예를 들어, 서울에 있을 땐 버거킹 한 번도 안 갔는데, 요즘엔 괜히 버거킹이 그렇게 맛있어요. (웃음) 주변에 선택지가 많지 않다 보니까 그런 사소한 것들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거죠. 너무 풍족하지 않고, 약간의 결핍이나 고립이 있을 때 오히려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이 더 잘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이 제주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예요.
실내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다가 밭에 나가 일하고 계시잖아요. 뭐가 가장 달라졌어요?
크게 보면 저는 사실 그렇게까지 다르진 않다고 생각해요. 마케팅이라는 게 결국 갖고 싶게 만드는 일이잖아요. 농사도 똑같아요. 작물을 키우고, 직거래를 하고, 그걸 어떻게 브랜딩해서 팔지 고민하는 일까지 결국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죠. 그래서 저는 ‘직업이 바뀌었다’ 보다는 ‘아이템이 바뀌었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다만 예전에는 마케팅만 했지만, 지금은 상품 기획, 고객 응대, 콘텐츠 기획까지 전부 제가 도맡고 있어요. 역할이 훨씬 넓어진 거죠. 아! 또 있네요. 외근이 많아졌어요.
농부로 살면서 삶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맞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해야 오래간다는 걸 확실히 배운 것 같아요. 무언가를 너무 꼼꼼히 계획하고, 크게 기대하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방식은 제 성향이랑은 잘 안 맞더라고요. 처음부터 ‘농사를 해야겠다’ 마음먹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요. 우연히 하게 됐고, 하다 보니 괜찮아서 계속 이어온 거죠. 오히려 ‘반드시 해내야 해’, ‘이건 꼭 해야만 해’ 같은 마음이었으면 오래 못 버텼을지도 몰라요. 그런 의미에서 저한테는 ‘자연스러움’이 가장 큰 에너지고 앞으로도 그게 제 삶의 방식일 것 같아요.
귀농 초반, 가장 막막했던 건 뭐였어요?
땅을 구하는 일이요. 저는 사실 운이 좋았어요. 바로 매매는 못 했어도 지인 밭을 빌려서 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덕분에 청년 창업농 지원사업도 받을 수 있었죠. 이게 왜 중요하냐면, 이 사업을 신청하려면 자기 이름으로 계약된 밭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농업인’으로 인정받고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게 없으면 공식적으로는 무직 상태인 거예요. 농지는 ‘농지은행’이라는 시스템에서 구할 수 있어요. 밭 주인분들이 여기에 임대할 땅을 게시하는데, 사실 제가 구할 때 매물이 귀했어요. 저도 몇 번씩 전화하고 알아보다가 겨우 구했어요. 진짜 운이 따랐죠. 만약 밭을 못 구한 상태에서 귀농을 시작하면 현실적으로 많이 힘들 수 있어요. 지자체의 지원도 못 받고, 수익도 불안정하니까요. 요즘은 청년 농부, 이주 농부를 위한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으니 그 조건을 꼭 잘 알아보고, 받을 수 있는 건 최대한 받아서 시작하셨으면 해요. 농사는 결국 사람 손이 필요한 일이잖아요. 도움받을 수 있는 제도를 찾는 것도 농사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농사를 사업으로 접근할 때 제일 많이 경계했던 건 뭐였어요?
전 애초에 금전적 투자는 최소화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제가 몇억 원을 들여 땅을 사고 농사를 시작했는데 6개월 동안 200만 원 벌었다? 그보다 무서운 일이 없죠. (웃음) 이 다음부터는 매 선택이 경직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는 ‘내가 원하면 언제든 그만둘 수도 있다’라는 여지를 항상 열어두려고 했어요. 그런 식으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게 저한텐 정말 중요했어요.
농사와 판매를 병행하시잖아요. 그 사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뭔가요?
농부라는 정체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예를 들어, 어떤 상품이 잘 팔린다고 해서 ‘이제 농사는 외주화하고 판매에만 집중하자’는 식으로 가버리면 그저제주의 큰 장점, 내 손으로 농사지은 제철 농산물을 판다는 가치가 사라지는 거거든요. 물론 그 사이에서 고민은 많아요. 상품성도 높이고 싶고, 수확량을 늘려서 마진을 올리고 싶기도 하죠. 그래서 어느 한 방향에 쏠리지 않도록 밸런스를 계속 점검해 가며 농사와 판매를 함께 설계하고 있어요.
“제주 내려가서 나도 농부 해볼까?” 이런 얘기, 친구들한테서도 종종 들으시죠?
그런 친구들이 가끔 있어요. 그러면 일단 밭에 데려가서 일을 엄청 시켜요. 그러면 금방 깨닫죠. 지금 자신의 직업과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요. (웃음) 사람마다 상황과 성향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내가 좋다고 해서 ‘너도 해봐!’라고 말하는 건… 어떻게 보면 무책임하고 폭력적일 수 있어요. 제가 햄버거를 좋아한다고 다른 이들도 다 햄버거 좋아하라는 법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무작정 권하진 않아요. 다만 이해해 줘요.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들고, 어딘가에 부대끼는 마음이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말해요. 그럴 땐 그냥 놀러 와. 나 여기 언제든 있으니까.
이 한마디에 여유가 묻어나요
퇴사하고 여행을 떠났던 순간부터, 제주에 정착하기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잘 풀린 일도 많았지만, 계획이 틀어지거나 예상대로 되지 않은 일도 꽤 있었죠. 그런데 돌아보면 오히려 그 ‘틀어짐’ 덕분에 더 좋은 결과가 따라온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저는 ‘될 놈 될’이라는 말을 믿는 편이에요. 잘 풀리면 ‘역시 될 놈이구나’ 하고, 안 풀리면 ‘나중에 이게 좋은 계기가 되겠지’ 하고요. 그렇게 쌓인 경험이 제가 저를 더 믿을 수 있는 힘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가 어떻든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고요. 그런 마인드 덕분에 실제로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도 더 많아졌다고 느껴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지금 저는 이 일이 너무 재미있어요. 제 브랜드로 농사를 짓고, 무언가를 만들어 가고, 작지만 조금씩 성장해 가는 그 느낌이 정말 좋거든요. 그래서 요즘 세운 목표는 70살까지 내 브랜드로 계속 일하는 것이에요. 지금처럼 농사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스스로 신나서 일할 수 있는 상태로 오래오래 가고 싶어요.
그 목표를 위해 지금 하고 있는 실천이 있다면 하나 들려주세요
보통 가을이면 가을방학을 스스로 만들어서 쉬어요. 작년 10월엔 규슈 올레길을 다녀왔는데, 거기도 제주 올레랑 협업해서 생긴 곳이거든요. 올해는 네팔을 계획하고 있어요. 사실 이건 ‘쉬는 것도 습관’이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그래, 이 시기에는 당연히 쉬어야지’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활 리듬을 만들 수 있게요. 안 그러면 사실 농사일은 365일 내내 일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스스로 잠시 멈춰주는 것도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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