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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비매품] 월급 대신 바닷속 프리랜서를 택한 젊은 해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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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월급 VS 한만큼 버는 바다의 프리랜서 - 진소희 거제 해녀

풍덩! 찰랑거리는 수면 위로 몸을 던진 다음 태왁을 정리하고 숨을 고르고… 잠수!

거제 해녀 진소희 님의 일터는 수심 10미터 아래 바닷속입니다. 스물다섯, 많은 이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택할 때 그는 정반대로 뛰어들었죠, 바다로요. 그렇게 물질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10년. 오늘도 거제 덕포 앞바다에서 그는 두 손으로 하루의 성과를 직접 건져 올립니다.

진소희 님이 바다에서 캐내는 건 단순한 해산물만은 아닙니다. 날씨, 조류, 몸 상태에 따라 매일이 달라지는 예측 불가한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도심에선 느낄 수 없었던 진짜 자유와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거제 오는 길에 보니 벚꽃도 피고 개나리도 피고 온통 봄이에요.

바닷속도 지금 한창 봄이에요. 요즘엔 입수할 때마다 신나요. 주홍빛 멍게꽃 활짝 폈지, 톳이랑 미역도 새싹처럼 막 올라오지, 진짜 지금이 제일 예쁠 때예요. 바다에도 사계절이 있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풍경이 다 다른데 그중에서도 봄과 가을이 단연 최고죠. 해초들은 풍성해지고, 해산물도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저희 해녀들은 그래서 지금이 가장 바쁜 계절이에요.

요즘 바다엔 뭐가 제철이에요?

해삼, 홍해삼, 돌미역이 완전 제철이에요. 전복도 많이 나가요. 300~500g 정도면 제 손바닥만 한 크기인데 시세에 따라 다르지만 1미에 8만 원 정도 해요. 성게도 꽤 문의가 많아요. 성게알은 100g에 1만 원 정도예요. 오마카세 붐이 일고 나서는 서울 레스토랑의 주문이 더 많아졌어요. 한 번 맛보시면 재주문이 꼭 들어와요. (웃음)

그러고 보니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 의뢰를 많이 받으셨죠.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뭐예요?

해녀는 왜 시작했는지, 그리고 수익은 얼마나 되는지 이 두 가지를 제일 많이 물어보세요.

그럴 때 소희 님의 답은?

멋있어서요! 나이 드신 분들이 건강하게 물질하는 모습이 진짜 멋져 보였어요. 그리고 물론, 수익도 되니까요.

그러네요! 보통 직업을 선택할 때 ‘돈이 되느냐’를 먼저 생각하잖아요. 근데 해녀 일은 왠지 그 기준으로 잘 안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나 전통문화로만 접해서 그런 걸까요?

해녀라는 직업을 신비롭게 보곤 하죠. 오히려 ‘그걸로 돈이 돼?’ 이런 반응이 많아요. 근데 저는 처음부터 그게 제일 궁금했어요. 2016년쯤 엄마가 거제로 이사하시면서 앞집에 해녀 이모님을 처음 만났거든요. 당시 연세가 60대 후반이셨는데, 물질할 때 고무옷 입은 모습이랑 퇴근 후 싹 꾸미고 외출 준비한 모습이 너무 다른 거예요. 완전 슈퍼 히어로 느낌! 그래서 슬쩍 물어봤죠. ‘해녀 하면 얼마나 벌어요?’ 그랬더니 “많이 벌지!” 그 한마디 듣고 저는 고민 끝. 바로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그전에도 돈이 중요한 기준이었나요?

돌아보면 늘 제 삶의 중요한 기준이었어요. 학창 시절에도 대학 진학보다는 어디서 어떻게 돈을 벌지를 더 고민했거든요. 그래서 자격증을 빨리 따서 21살에 피부 전문병원 관리사로 일찍 취업했어요. 그런데 직장 생활 4년 차쯤 되니까 미래가 잘 안 그려지는 거예요. 내가 일한 만큼 충분히 받고 있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게 조금씩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됐죠.

해녀라는 일을 선택할 때 고민되는 점은 없었어요?

물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그냥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무엇보다 저는 고민을 오래 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못 먹어도 고!’ 해봐야 알죠.

평상시 일과가 궁금해요.

저희 출근 시간은 간조 시간에 맞춰 달라져요. 그때가 바닷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시간이라 해녀들은 그 시간을 기다리거든요. 먼저 작업실(컨테이너)로 가서 1시간 정도 물질 준비를 하고, 바다로 나가 4시간 정도 작업해요. 어판장으로 돌아와 그날 채집한 해산물을 손질하면 얼추 하루 일이 끝나죠. 바로 직거래하거나 경매, 거래처로 부치기도 해요. 작업일은 한 달에 많아야 15일 정도예요. 파도치고 바람 불면 아예 못 나가거든요.

일은 어떻게 배웠어요?

집 앞 제일 가까운 해녀 배를 찾아갔어요. 간식도 사 가고, 커피도 타드리고, 저도 좀 해보고 싶다고 얼굴을 들이밀었죠. 처음엔 “무슨 해녀? 우리 세대가 끝이다” 하셨어요. 그래도 계속 가니까 “돈은 된다, 한번 해봐라” 하시더라고요.

‘우리 세대가 끝’이라는 말씀이 좀 쓸쓸하게 느껴지네요.

제가 들어오기 전에 막내 해녀분이 60대이셨어요.

그래서 소희 님의 해녀 선언이 더 반가웠을 것 같아요.

네, 이모님들이 정말 저를 손녀처럼 챙겨주셨어요. 태왁도 선물해 주시고, 물때, 조류, 바람, 지형 다 하나씩 알려주셨어요. 제가 너무 못하니까 이모들이 손잡고 같이 들어가서 알려주시고, 직접 제 어망에 넣어주시기도 했죠.

직접 해보니 어떠셨어요?

1년 차 월수입이 30만 원이었어요. (웃음) 그래도 지치지 않았어요. 대신 잘하는 이모님 보면서 ‘저만큼만 하자’라는 목표를 세웠죠. 그분의 움직임도 따라 해보고, 가는 곳도 따라가 보면서 하나하나 배워나갔어요. 그래서인지 1년 지나고부터는 딱 그 이모만큼 했어요.

‘자기가 한 만큼 벌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갈고 닦는 게 중요하겠네요.

맞아요. 해녀 일은 직장인이 월급 받듯 정해진 게 아니라 정말 내 능력대로 버는 거예요. 많이 벌 땐 한 달에 500~600만 원도 되지만, 못할 땐 100만 원도 안 돼요. 수산물 시세는 시기나 지역, 수요에 따라 계속 바뀌거든요. 그게 또 해녀 일의 특징이죠.

서로 누가 많이 잡나, 그런 보이지 않는 긴장감도 있겠네요.

네, 확실히 선의의 경쟁이 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도 있죠. ‘오늘 꼴등은 피하자.’ (웃음) 이게 남과 비교하고 내 능력을 판단하고 그런 게 아니라 일에 있어 누구보다 진지해지는 거예요. 그게 이 일의 재미이기도 하고요.

해녀 일은 혼자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맞아요. 일종의 팀전이거든요. 바다에선 서로가 서로의 안전망이에요. 배가 오거나 이상 상황이 생기면 먼저 확인한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바로 알려줘요. 그리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항상 있어요. 제가 배울 때도 선배 이모님들이 항상 쉬운 자리를 내주셨어요. 지금은 제가 깊은 수심을 타니까 이모님들께 수심 얕은 곳을 내주고요. 결국 서로 같이 잘 먹고 잘 살아야 되니까요.

이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투자해 본 적도 있나요?

처음에 수압이 너무 힘들었어요. 귀가 아파서 병원도 다녔는데 안 낫더라고요. 이모들은 진통제 먹으라고 하는데 저는 직업인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퀄라이징을 제대로 배우기로 했죠. 부산에 큰 센터를 오가며 배우고, 필리핀 연수도 가고, 결국 프리다이빙 강사 자격증까지 땄어요. 교통비 포함해서 2천만 원 넘게 썼는데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그 뒤로는 바다에서 진짜 훨훨 날아다녔어요.

해녀 일은 수입이 들쑥날쑥한데, 재테크나 돈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저승에서 벌어서 이승에서 쓴다고 할 정도로 힘든 일이긴 해요. 정말 제 피땀 눈물로 번 돈이니까 함부로 쓸 수가 없어요. 게다가 해녀는 고위험 직업이라 보험 가입도 쉽지 않아서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해요. 제가 의외로 투자 같은 건 잘 안 하는 편이에요. 바다 일 자체가 워낙 변수가 많으니까 돈 관리만큼은 안정적으로 가고 싶거든요. 그래서 연금은 꾸준히 넣고 있고, 수입의 60%는 무조건 저축하고 있어요.

‘요즘해녀’ 유튜브 채널이 인기인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인스타에 올린 해산물 사진에 사람들 반응이 의외로 폭발적이었어요. “거제에도 해녀가 있어요?” “바닷속이 이렇게 예뻐요?” 이런 댓글이 막 달려요. 그때 깨달았죠. 사람들이 아직 해녀에 대해 모르구나, 궁금해하는구나. 그래서 동료 해녀인 정민 언니랑 채널을 시작했어요. 요즘 해녀는 거제도에 있고, 이렇게 재밌게 살고, 유튜브도 한다! 보여주는 거죠.

해외에서도 관심이 뜨거운 것 같아요. 해외 매체 인터뷰 소식도 종종 보았어요.

영국, 미국, 독일 미디어팀이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온 적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어업인이 감소 추세인데, 특히 젊은 여성 어업인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마다 느껴요. 우리 해녀 문화가 해외에서도 이렇게 인정받는구나. 이제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보존해야 할 우리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계속 이어가야 할, 가치가 있는 일이죠.

해녀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그 결과를 스스로 단단하게 만들어가려는 굳은 심지가 느껴져요.

처음에는 “얼마나 하겠어?” “곧 그만두겠지”하는 시선도 있었어요. 그때마다 오기가 생겨요. ‘내가 진짜 끝까지 해보겠다’는. 물론 쉽지 않지만,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디 있겠어요? (웃음) 중요한 건 뭐든 해보고, 작은 성취에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 같아요.

소희 님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새로운 선택 앞에서 망설이는 분들께 조언 한마디 해주신다면?

선배 이모가 그래요. 우리는 숨 참고도 일하는데 숨 쉬면서 못 할 일이 뭐가 있냐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심장이 저릿저릿했죠. 맞다, 숨 참고도 일하는데 숨 쉬면서 세상에 못 할 일이 뭐가 있을까. 마음먹으면 할 수 있어요. 계산하느라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 작게라도 시작해 보고, 실패해도 다시 방향을 조정해 보는 게 훨씬 나은 것 같아요. 그래야 그 시간이 온전히 내 자산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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