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비매품] 회사 대신 살림을 택한 전업주부 아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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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비매품] 회사 대신 살림을 택한 전업주부 아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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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에서 전업주부로, 아이 넷 아빠의 10년 인생 2막 - 문현준 전업주부

평일 오전 9시 30분, 문현준 님은 이미 마라톤을 한 번 뛰고 난 듯합니다. 아내의 도시락을 정성껏 싸서 보내고, 첫째와 둘째의 아침밥을 준비하고 등교시키고, 셋째와 넷째를 먹이고 등원까지! 그 와중에도 ‘#파워등원’, ‘#파워육아’ 순간들을 영상으로 담아 인스타그램에 기록합니다. 회사원에서 전업주부로 전향한 지 10년, 그는 스스로를 우리 집 ‘외벌이 마에스트로’라 부릅니다.

가정주부라는 역할을 우리는 얼마나 깊이 생각해 봤을까요? 누구나 그 일의 복잡함을 알지만, 거기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자부심으로 채워가는 건 쉽지 않습니다. 문현준 님은 바로 그 일상 속에서 특별한 가치를 발견하고 쌓아갑니다. 아이들의 첫 걸음마부터 사춘기의 속 깊은 이야기까지 모든 순간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는 것, 아내와 함께 이 가정이라는 오케스트라를 조화롭게 이끌어가는 것. 그가 선택한 인생 2막의 즐거움입니다.

지금 오전 10시인데요. 아이들이 모두 등교, 등원하고 찾아온 아침의 고요한 적막인가요?

그렇죠. 첫째, 둘째가 1시 30분쯤 집에 와요. 3시 30분에 넷째, 4시에 셋째를 데리러 가니까 지금부터 딱 3시간이 저의 시간입니다. (웃음)

가족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희 가족은 6명이고요. 첫째가 11살, 둘째가 10살, 셋째가 7살, 막내가 30개월, 4살입니다.

네 명의 자녀를 계획하셨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요. 처음부터 계획하신 건가요?

아내가 연애 시절부터 가진 바람이었어요. 네 자녀를 가지고 싶고 딸, 딸, 아들, 아들 이런 성비를 원했죠. 그리고 본인이 선호하는 띠가 있대요. 양, 원숭이, 돼지, 호랑이, 소. 그중 4개를 적중시킨 거예요.

결혼이란 것을 하지만, 사실 우리는 각자 다른 사람이잖아요.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다른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죠. 심지어 저희는 종교도 달랐어요. 그래서 적어도 하나만큼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부의 공동 목표로 네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을 정했고, 그건 충분히 자신 있다고 생각했어요.

첫째 때부터 전업주부를 하셨나요?

첫째 때는 사실 장모님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런데 둘째를 바로 연년생으로 임신하고 출산을 앞두게 됐죠. 어느 날 아내가 “우리 둘째가 태어나면 어떡하지?”라고 묻더라고요. 저는 ‘장모님이 안 봐주신대?’라고 무심히 되물었는데, 그 순간 번뜩 알아차렸어요. 사실 이건 우리가 목표로 한 거지 장모님의 목표는 아니었잖아요. 아내 역시 우리 엄마의 삶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래서 현준님이 전업주부가 되기로 하신 거군요!

네, 부부가 그 목표를 이루려면 한 사람은 육아를 전담해야 했어요. 저는 취사병 출신이라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들을 다양하게 만들어줄 수 있었죠. 무엇보다 체력적으로 자신이 있었어요. 저는 출산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 그런 면에서 아내보다는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었죠. 집안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양가 부모님께 이 결정을 알렸을 때 걱정이나 반대는 없으셨나요?

제가 장남의 장손이거든요. 부모님은 제가 하는 결정을 다 믿고 따라주십니다.

전업주부가 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20대에는 직장 생활을 하며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으로 모든 일에 임했어요. 그 조직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 되겠다는 목표로 정말 열심히 일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깨달았어요. 조직 입장에서 내가 대체 불가능한 인력이 되면 오히려 리스크가 아닌가? 결국 이 구조 속에서 나는 그저 한 파트를 맡은 부품일 뿐이구나.

그 후로는 욕심내지 않고 주어진 역할만 하며 무료하게 직장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모든 노력이 의미가 없었다고 느꼈을 때, 마침 아빠가 되었어요. 이 집 안에서야말로 내가 정말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겠구나, 전업주부 역할을 내가 정말 잘 해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즐겁게 새 일을 맡았습니다.

그럼 전업주부가 된 지 몇 년 차이신가요?

전업주부 10년 차가 됐어요. 어떤 역할을 맡든 10년 정도가 되면 그 분야에 숙달이 되고 자기를 표현하는 명칭이 바뀐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를 표현할 수 있는 호칭을 만들어봤는데요, 저는 ‘외벌이 마에스트로’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가용소득을 늘리는 데 특화되어 있어요.

가용소득 늘리는 데 특화되어 있다는 말씀, 너무 솔깃한데요.

예를 들어 장난감 하나를 사더라도 마트, 인터넷, 도매상의 가격이 다 다르잖아요. 식재료도 마찬가지예요. 똑같은 품목이라도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죠. 그래서 저는 홈플러스, 다농마트, 망원시장에서 사는 품목이 각각 달라요. 계란 같은 경우는 연남동 끝에 있는 계란 공판장에서 사면 가장 저렴하죠. 이렇게 무엇을 어디서 사면 가장 합리적인지를 파악하고 있어요. 제가 직접 수익 활동을 하지 않아도, 이런 방식으로 실제 쓸 수 있는 소득이 늘어나는 거죠.

가족 6명의 한 달 식비는 얼마나 되나요?

제 생각엔 한 달 식비로 40만 원 안으로 들 것 같아요.

정말 대단하신데요! 비결이 뭔가요?

외식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에요. 대신 아이들이 집밥을 좋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같은 식재료로도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요. 군대 용어로 일품요리라고 하죠. (웃음) 한 그릇 음식을 정말 잘합니다. 제가 기본적으로 구비하는 식재료는 돼지고기, 양파, 당근, 애호박, 마늘 등이에요. 이것만 있으면 한 15가지 정도의 요리를 만들 수 있어요. 아내 도시락도 매일 직접 싸줘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용돈이나 관련 지출이 늘어날 텐데, 경제 교육은 어떻게 하시나요?

저희는 아이들이 스스로 돈의 가치를 알고 계획하는 법을 배우길 바라요. 첫째, 둘째가 이제 돈을 알 나이잖아요. 그래서 예를 들어 정기적인 용돈 대신 아이들이 직접 돈을 벌 기회를 만들어줘요. 마을 바자회에서 셀러로 참여하게 하는 거죠. 그렇게 번 수익금 중 일부는 마포희망나눔에 기부하고, 나머지는 스스로 어떻게 쓸지 정해요. 이렇게 안전한 틀 안에서 돈을 다루는 경험을 자주 제공하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 맞는 경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인터뷰에서 육아 노하우 중 하나가 ‘이 동네’라고 하셨던데, 어떤 의미인가요?

맞아요. 제가 전업주부가 되면서 이 동네로 이사를 왔어요. 여기는 마포구에 있는 성미산 마을인데, 마을 공동체나 공동육아가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는 곳이에요. 저도 이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어 아이들을 함께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왔어요. 무엇보다 부모 커뮤니티에 들어가고 싶은 바람이 있었어요.

그렇게 함께 한다는 건 왜 중요했어요?

공동육아에 직접 뛰어들지 않더라도 그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공동체의 혜택을 받는 느낌이 들어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각 시기마다 과제들이 생기잖아요. 유아기가 지나면 학령기, 학령기가 지나면 청소년기. 그럼 사춘기는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고민들이 계속 이어지죠. 그런 과정에서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빠들의 모임은 찾기 어렵지 않나요?

맞아요. 대부분의 육아 모임은 엄마들이 주축이거나 조부모님들이 참여하시죠. 저는 가끔 생각해요. 아빠 조리원은 왜 없을까? 게임에 비유하자면 고인물들이 뉴비들을 도와주는 것처럼요. 아이템도 나눠주고, 함께 사냥하며 경험치를 쌓을 수 있게 도와주잖아요. 그런 것처럼 유치원, 어린이집을 거쳐 간 선배 아빠들이 모여 있으면 이제 막 육아를 시작한 아빠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토요일마다 #아빠표놀이터를 여신 거군요?

제가 관계를 맺고 있는 또보자 마을학교에서 중고 대형 트램펄린을 구입했어요. 이걸 토요일마다 동네 공터에 설치해서 아이들이 와서 놀 수 있게 만들었죠. 트램펄린을 설치하면 자연스럽게 동네 사람들이 모여요. 같은 학교를 다녀도 학년이 다르거나 학원이 다르면 서로 모르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트램펄린에서는 모두가 만나게 돼요. 형, 언니, 오빠, 누나, 동생들이 다 모이고, 부모님들도 함께 오시니까 자연스럽게 아빠들도 어울려요. 이렇게 동네의 자원을 활용하는 거죠. 정말 좋아요.

이런 활동이 동네를 사랑하는 방법이 되는 것 같아요.

주말에 아이들과 특별한 시간을 보내려면 꼭 상업적인 장소에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저희처럼 6인 가족이면 입장료며 외식비며 만만치 않아요. 거기다 대기 시간까지 생각하면 정말 적지 않은 지출이죠.

그래서 이 시간이 더 소중해요. 굳이 멀리 가지 않고도 동네의 자원들을 활용해서 여러 가족들이 함께 모여 놀 수 있다는 것. 이 경험은 정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현준님이 지금의 삶을 정말 사랑하신다는 게 느껴져요.

저는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전업주부라고 말해요. 지금이야말로 제 삶의 진짜 주인으로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열심히 하면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고, 더 잘하고 싶어서 노력하면 박수를 쳐줘요. 무엇보다 제가 한 모든 노력들이 고스란히 우리 가족에게 돌아가죠. 전업주부는 정말 멋진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는 아빠의 전업주부 역할이 어떻게 보일까요?

몇 년 전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기자분이 아이들에게 ‘아빠 직업이 뭐예요?’라고 물으셨어요. 당연히 전업주부라고 답할 줄 아셨나 봐요. 그런데 아이들은 달랐어요. ‘아빠는 요리해 줘요, 아빠는 놀아줘요, 아빠는 그림 그리는 거 도와줘요’라고 답하더라고요.

물론 전업주부라는 역할이 사회적으로 정해진 개념이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저는 유명한 전업주부가 되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전업주부도 다 같은 전업주부가 아니라는 것을요. 우리 집만의 특별한 전업주부 역할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10년 차 외벌이 마에스트로로서 전업주부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전업주부는 가족이라는 배에 닻을 내리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든, 아이가 갑자기 다른 학교로 진학하든, 가족에게 어떤 변화가 찾아와도 우리가 큰 파도나 바람에 휩쓸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거죠. 모든 것들을 조율하고 안정시킬 수 있게 하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전업주부의 역할입니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기성복이 아닌 저희 가족에게 딱 맞는 옷을 재단하고 지어 입는 시간이었어요. 이제 첫째, 둘째가 고학년이 되고 곧 중학생, 고등학생이 될 거예요. 앞으로는 이 아이들이 청소년기, 사춘기라 불리는 시기를 건강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그게 제 다음 10년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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